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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동산] 서울 그리고 부동산, 그 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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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면 부동산, 부동산 하면 서울

영끌을 통한 주식투자, 비트코인도 광풍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 불패신화'를 무시할 수 없다

그 부동산 불패신화의 중심에는 서울을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출처: 나무액터스

오늘은 서울에서 부동산의 신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

 

<한양의 탄생>

서울이 대한민국 부동산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은 조선 시대 때부터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한 것이 가장 중요한 계기다. 이방원의 왕자의 난으로 개성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태종때 다시 한양으로 옮겨지고 제대로 이때부터 서울이 수도로 자리잡게 된다.

고려 시대에 수도가 개성이고 서울은 위성도시였다. 지금으로 치면 화성정도였을까. 당연히 지금의 강남 역활은 개성이였다. 서울의 좋은 입지조건으로 권력이 이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이었다. 개성의 1마지기 가격이면 서울 땅 100마지기 정도를 살 수 있었기에 수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졌고 지금의 서울이 자리할 수 있었다

<서울의 탄생>

조선 시대에는 고작 서울은 숙정문,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으로 종로와 중구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종로에는 일자리도 많았고 고위 공무원들도 많이 근무하였다. 경복궁으로 출퇴근과 근방에서 거주를 하였다. 정도전이 살았던 삼봉로, 율곡이 살았던 율곡로 등 종로에 있는 도로명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500년간 종로와 중구,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해방 후 7개의 구, 용산, 동대문, 성동, 서대문, 영등포가 추가 되었다.

이렇게 편입된 곳이 부동산 시세가 오르기 시작했다.

1945년엔 마포구, 1949년에는 성북구, 1973년에는 관악구 도봉구, 1975년에는 강남구, 1977년에는 강서구, 1979년에는 은평과 강동구, 1980년에는 구로구와 동작구, 1988년에는 송파, 중랑, 노원, 서초, 양천, 1995년에는 강북, 금천, 광진구가 서울로 편입되면서 현재의 서울 행정구가 완성됐다. 

출처: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이렇게 서울이라는 곳이 한양에서 중심업무지역 그리고 행정구가 계속 확장하면서 일하고, 공부하고, 다양한 라이프가 존재하고 부동산이 발전하게 되었다.

서울시 인구변화 (출처: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강남의 탄생>

조선 시대 때부터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도시고 일제 강점기에는 본격적인 산업화,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인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서울은 50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하게 됐다. 이로 인해 이토록 작은 면적에 5배 천만 인구가 살게 된 것이다. 

처음 종로구와 중구를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정부의 강남이라는 신도시 개발로 패턴에 변화가 생긴다

사실! 서울에서 인간이 거주한건 신석기 시대부터이다. 그리고 거주한 곳이 강남이다. 수세기를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고려 시대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어 작은 도시를 형성했고 그 뒤로 1970년대 정부의 적극적인 강남 개발로 지금의 강남이 형성되게 됐다. 

그리고 현재 평당 1억 원을 넘나드는 부동산들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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